사계 나의 이전 작업들에서부터 줄곧 지속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는 시간에 대한 감정이다. 잊혀져가는 기억에 대한 기록과 더불어 흘러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소중함과 같은... 이번 '사계'연작은 빈 병과 과일이 오브제로 등장한다. `Time in a Bottle‘을 듣고 영감을 얻어 빈 병 속에 아쉽고 소중한 시간을 영원히 담아내고 싶다는 은유적 염원을 표현하고자 정적이고 차분한 감성을 나타낸, 사진이지만 전통적 회화의 감성을 구축하려한 정물사진이다. 시간의 확장성으로 계절을 연상하게 되었고 제철의 느낌을 주는 과일과 조우하여 마음 속 깊은 울림과 감정이입이 됨을 표현하였다. 현재 나의 작업세계에 바로크 정물화의 고전 예술 감성을 투영하여 지나간 고전 예술을 회상하고 더불어 모호하고 감지하기 힘든 인생에 대한 나만의 감정들을 혼합시키고자 하였다. 주 오브제인 빈 병에 큰 의미를 부여하여 기존의 병이 주는 이미지가 아닌 예술이 줄 수 있는 무한대의 언어효과로서의 색을 입히는 나만의 시각적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하찮은 소재들에 대해서도 결코 쓸모없지 않고 그 자체로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무심한 듯 보이는 병에는 여러 인공조명의 빛을 주어 다양한 감정으로 빛나고 있음을 암시한다.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빛을 재현하여 인상주의 미술이 그랬듯이 나의 빛 또한 사물에 강렬하게 부딪치고 나타나는 하이라이트와 그림자가 이러한 감정의 선을 계속 이어간다. 이번 '사계' 연작 속 또 다른 오브제인 과일은 나의 일상에 매주 일요일마다 가는 과일시장에서 만나면서 제철 그 적정시기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어느덧 나에게 있어 시간의 흐름을 일깨워주는 반갑고 신기하기도 한 애틋한 소재이다. 빈 병은 그 속에 담겨졌었던 내용물과 시간의 기록들이 소멸되는 과거에서의 흘러간 시간을 상징하는 소재이고, 반면에 빛나는 생생한 제철과일을 통해서는 현재 지금의 시간을 주목하기를 바랐다. 이렇게 대립적인 개념을 내포한 두 오브제를 또 다른 대립 개념을 지닌 빛과 그림자를 가지고 시각적으로 극대화시키고, 이전 작업과 다른 비스듬하고 이질적 배경의 구도와 촬영 당시의 감정에 충실한 색감을 반영함으로써 상호 관계성을 도출시키고자 하였다. 시간의 소중함, 현재의 가치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간이 품은 숭고한 의미를 이 두 가지 오브제에 고전적 감성으로 표현하여 인생의 많은 물음표에 대한 답을 찿아 가는 과정에 있어서의 지금의 나 ,우리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 작가노트 중에서
오색찬란(五色燦爛) 10년 전 ... 겨우내 가지만 있던 나무가 목련인 줄 몰랐다. 봄이 저물어 갈 무렵 화려하고 아름답게 핀 목련은 우수수 떨어졌다. 바닥에 처량하고 슬픈 모습을 한 체... 나는 불현듯 이 아름다운 순간을 하염없이 보듬고 싶었다. 봄에 화려하고 오색찬란한 모습의 순간을 진심(眞心)의 감성으로 담아내고 싶었다. 나의 사진 속 꽃은 영원함에 대한 덧없음과 그것을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간직해 보려는 은유적 표현이다. 그래서 시작한 꽃을 통한 작업은 10년 세월동안 변함없이 나의 카메라를 통해 다시금 보존 되어 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찬란한 시절이 있던 것처럼 그때의 기억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하는 마음을 이번 전시 ‘오색찬란(五色燦爛)’에 담으려 했다. 오색찬란(五色燦爛).나의 사진 속 꽃은 영원함에 대한 덧없음과 그것을 사진이란 매체를 통해 간직해보려는 은유적 표현이다. 꽃의 연약한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인공적인 조명을 사용하여 궁극적인 색감과 형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빛을 만들었다. 그리고, 색과 면으로만 존재하는 단순한 배경과 테이블이 만들어낸 긴장감 속에 화병이란 도구를 통하여 그들의 조화로움을 시도하여 꽃의 순수한 이미지를 극대화하고자 했다. 꽃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손끝에서 만들어낸 화병의 어울림으로 느껴지는 최고의 절정의 순간을 담백하게 담아내고자 했다.
- 작가노트 중에서
시대정물
모던은 인류모두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다. 이러한 편리함은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야 하는 일들을 컴퓨터 하나로 혁신적으로 시간과 노동력을 줄이게 만드는 효과를 주었다. 많은 노동력과 시간의 절약은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부정적 면도 많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의 깊이를 갖지 못한 채 그 빠른 변화에 따라 가야했다. 변화라는 새로운 열차에 탑승한 이상 우리는 쉽게 열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지나간 정거장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 새로운 정거장을 맞이해야 했다. 인간의 도구가 발달 해온 역사 가운데 지금의 변화가 가장 빠르게 급변하는 것 같다. 도구의 편리성 때문에 인간은 도구에 많이 의지 했고 또 그것을 편리하게 이용해 왔다. 어느 순간 우리는 가장 친근한 이들의 전화번호도 기억을 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도구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었지만 인간 본연에 기능을 점점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 같다. 지금도 길을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면 작은 스마트 폰에 열두하고 있는 이들을 쉽게 발견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질문들을 우리는 작은 검색창 하나에 물어보고 답을 구해내곤 한다. 우리의 사고에 의해 결정하기 보다는 작은 창에서 나오는 질문의 결과에 의해 행동한다. 이것은 무서운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인간을 기계의 부산물처럼 만들어내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나의 모든 비밀을 SNS에서 고해성사 한다. 마치 중세의 고해성사처럼 죄를 빌면 용서 받는 것 처럼 우리는 행동한다.
나의 작업 속 소품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 각각의 주인공으로 살아 왔었지만 이제는 사라지거나 사라질지도 모르는 것들이다. 나는 시인의 마음으로 마치 버려진 사물을 시적언어로 재탄생 시키듯이 사진에 담아냈다. 이러한 작업은 디지털 시대에 빠른 흐름 속에서 메말라가는 현대인의 감성에 노스탤지어를 불러 일으키려한다. 인간은 앞으로 몇 백 혹은 몇천년이 지나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과학의 혜택을 입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울고 웃게하는 가슴 속 감성은 아날로그이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물건들을 저 구석 혹은 서랍 속 깊은 곳에서 꺼내어 나만의 시각적 감성으로 표현하였다. - 작가노트 중에서
시간의 온도 모든 사람들의 삶 속에는 추억이 있다. 그 추억 속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지 않아도 불러 일으켜지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다양한 감정들이 내재되어있다. 그런 추억의 매개체 역할을 하는 사물에 대해 나는 정물(情物)이라 칭하고 싶다. 마음의 작용을 일으키는 물건이라고... 소박하고 낡았을 지라도 소중한 사람의 손때 묻은 사물들, 내가 관심 가는 물건들을 보았을 때 느끼는 희열감, 오랫동안 사용했지만 더 이상 쓸모없어져버린 물건들에 대한 쓸쓸함, 내겐 소중하지만 그 가치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느끼는 섭섭함 등등 정물(情物) 속의 시간은 그동안 천천히 더디게 흘러갔지만 그에 반해 급격히 변화되어가는 현대 사회는 새롭고 반짝이는 신문물들로 빠르게 넘쳐나고 있다. 각기 다양한 정물 속 감정의 온도를 느끼고 같이 호흡하며 추억을 함께 할 수 있는 그 가치를 인정해줄 수 있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영위하고 싶은 바램에서 나의 `시간의 온도‘ 연작은 탄생하게 되었고 특별하게 폴라로이드 필름을 사용하여 더더욱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하려 하였다. 불과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 전에 폴라로이드 필름은 가장 빠르게 사진을 얻어낼 수 있는 도구였다. 나는 이런 과거 폴라로이드 필름의 전성기와 지금 디지털시대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세대이다. `시간의 온도‘ 작업에 사용된 <후지 FP- 100C> 필름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고 단종 되었기에 아마도 미래에 계속 촬영이 이어질 수 없는 희소성이 담긴 사진들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나의 작업 중 `시대정물(時代情物)’연작에서 사라지고 없어질 물건들의 존재와 가치를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의식에 부합되는 도구였다. 예전 사진 촬영 시 노출측정을 위해 사용되곤 했던 폴라로이드의 보조 역할이 아닌 이번 `시간의 온도‘ 나의 작업에서는 당당히 주역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통상 의례적으로 보여 지는 폴라로이드필름의 포지티브 인화물이 아닌 네거티브로 버려지는 부분에 화학적 처리를 하는 아날로그적 나만의 새로운 사진기법 연구 즉 오로지 나의 감각과 필름, 정물과의 교감의 시간과 수작업의 결과물로 기존 사진과 느낌이 다른 회화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고 1억만 화소의 핸드폰이 나온 현시대에는 더 이상 만들어 내기 힘든 예측이 어려운 색감과 거친 입자의 희소성 필름인 폴라로이드를 가지고 한 작업이기에 더더욱 지난 날 우리가 걸어 온 복고의 시간들에 대한 경건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모네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면 공통된 빛의 느낌이 있다. 그들이 표현하는 빛의 시간은 정오의 시간이 아닌 저물어가는 오후의 빛으로 표현되어진다. 빛은 신의 창조물로서 인간의 섬세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 생각되어 나는 그 빛을 통해 아주 소박하고 단순한 물건도 인간의 여러 감정의 변화를 동요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그 물건들에 감정을 담고 극대화시키고자 했다. 나의 작업 속 오브제는 시간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수년간 찍어 온 꽃들은 어느새 분신 같은 존재가 되었고 시간의 흐름 또한 느끼게 하고 있다. 계절마다의 꽃에 대한 감정처럼 작품에 등장하는 제철 과일, 화병, 그릇 또한 나에게 어느덧 정물(情物)이 되어 시간의 온도로 다가왔다. 시나브로... - 작가노트 중에서